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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스페셜] 원전 이주의 기록 "안녕, 신리"

기사입력
2025-11-27 오전 09:57
최종수정
2025-11-27 오전 09:5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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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뜨는 바다, 한 마을의 기도- 신리의 아침은 해녀들이 해 뜨는 바다에 “오늘도 무사히”를 세 번 기도하며 시작했습니다. “돌만 빼고 다 돈이 된다”는 바다는 전복과 성게, 해초로 자식 공부와 살림을 책임진 삶의 은행이었습니다. 그래서 해녀들에게 바다는 쉽게 떠날 수 없는 터전이었습니다. -생업의 지도, 원전 부지로 바뀌다- 신리는 앞바다는 어장, 뒤편은 밭과 배 과수원이 이어진 작은 항구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울주군 서생면 신리 일대를 차기 원전 부지로 지정하면서 마을의 이름은 ‘원전 지구’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과수원은 하나둘 보상 대상이 되었고 “그 많던 배 과수원, 이 집 하나만 남았다”는 말이 현실이 됐습니다. -EAB 안에서 시작된 시간제한 이주- 원전 돔 반경 560m EAB 안에 들었다는 이유로 18세대가 시범가동 전 이주 통보를 받았습니다. 손해배상 경고 문서가 날아오자, 주민들은 “하루 1억이 넘는다”는 숫자에 겁을 먹고 임시 이주에 합의했습니다. “자고 나면 집 하나가 사라진다”는 말처럼 마을은 공터가 늘어가는 풍경으로 바뀌었습니다. -두 번 겹쳐진 이주의 기억- 신리 사람들은 고리·비학·골매가 고리 원전으로 집단 이주하던 시절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군 텐트에서 시작한 새 삶, 황금어장을 두고 떠났던 경험 위에 ‘신고리’라는 이름이 다시 겹쳤습니다. “한 번 쫓겨나 왔는데 또 원전이라니”라는 말에는 과거와 현재의 피로가 함께 배어 있습니다. -보상과 책임, 남겨진 사람들의 무게- 보상금은 숫자였지만 주민들의 삶은 그 숫자에 다 담기지 않았습니다. 이주지 땅값과 집짓기 비용을 합치면 빚이 남는 구조 속에서 주민들은 “그때 값이면 값어치 있었지”라며 재감정을 요구합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먼저 집을 짓고 떠났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은 “이장님만 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카메라 앞에서 “이장을 한 게 후회스럽다”고 눈물을 보인 이장에게 공동체 책임은 너무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장소를 잃는다는 것,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역사학자는 “장소는 단순한 환경이 아니라 정체성”이라고 말합니다. 골목과 돌담, 바닷바람은 한 사람의 삶과 마을의 얼굴을 빚어 온 흔적이었습니다. 그는 신리가 원전지구가 되더라도 “이곳이 사람이 살았던 마을이었다”는 사실을 공공의 유산으로 남기자고 제안합니다. 돌담과 골목 일부를 남기고 마을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장소를 새롭게 정의하자는 제안입니다. -안녕, 신리… 평안의 안녕이 되기 위하여- 신리는 여전히 해가 뜨면 바다에 “오늘도 무사히”를 인사합니다. 하지만 그 인사 뒤에는 언젠가 떠나야 할 터전에 대한 조용한 작별 인사가 겹쳐 있습니다. 마을이 사라진 자리 위에 무엇을 남길지, 어떻게 기억을 전할지에 대한 설계는 지금 세대의 몫입니다. 이별을 기록하는 일은 상실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참조할 지도를 그리는 일입니다. 언젠가 신리의 “안녕”이 이주와 상실을 넘어 평안(平安)의 안녕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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