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벽 손상을 알리는 위험 신호 RG-I와 감지 수용체 6종 발견
RG-I 투여하자 면역 유전자 활성화·병원균 저항성 향상…내병성 작물 개발 기대
건물의 화재 경보장치 처럼 식물도 세포벽이 손상되면 위험 신호를 감지하는 수용체가 갖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명확한 경로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국내 연구진이 식물이 손상을 감지하고 면역체계를 가동하는 원리를 처음으로 찾아냈습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 식물연구팀은 세포벽을 이루는 당 분자 조각과 식물 수용체 사이 상호작용을 대규모로 분석하는 고속 스크리닝 기술을 이용해 식물 세포벽의 주요 성분인 '람노갈락투로난-I'(RG-I)를 위험 신호로 인식하는 수용체 6종을 발견했습니다.
식물의 세포벽은 병원균의 침입을 막는 첫 번째 방어선입니다. 병원균이 세포벽을 분해하면 여러 종류의 당 분자 조각이 생성됩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식물에 공격 상황을 알리는 경보처럼 작용합니다. 식물은 이 신호를 감지하면 방어 유전자를 활성화하고 병원균의 확산을 막는 면역반응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어떤 당 분자가 실제 위험 신호로 기능하고, 세포 표면의 어떤 수용체가 이를 읽어내는지는 일부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세포벽을 구성하는 당 분자의 종류가 많고, 후보 수용체도 수백 개에 달해 모든 조합을 하나씩 실험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은 당 분자와 수용체의 결합 여부를 한꺼번에 확인하는 고속 선별 플랫폼을 구축했습니다.
식물 수용체 단백질 357종과 세포벽에서 유래한 당 분자 조각 122종을 교차 반응시켜 모두 4만3천554개의 상호작용을 분석했습니다.
분석 결과 세포벽 펙틴의 주요 구성 성분인 RG-I와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수용체 6종이 확인됐습니다. 연구팀은 이 수용체 집단을 'ARM'으로 이름 붙였습니다.
RG-I가 실제로 식물 면역을 활성화하는지도 검증했습니다. 식물에 RG-I를 투여하자 면역 신호 전달 경로가 작동하고 방어 유전자들의 발현이 크게 늘었습니다.
RG-I가 유도한 면역반응은 기존에 알려진 일부 위험 신호와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식물이 세포벽에서 발생한 신호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면역 경로를 선택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병원균에 감염되기 전 RG-I를 처리한 식물은 처리하지 않은 식물보다 병원성 세균에 강한 저항성을 나타냈습니다. 위험 신호를 먼저 전달해 면역체계가 침입에 대비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연구팀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ARM 수용체 6종을 모두 제거한 식물도 제작했습니다.
이 식물에 RG-I를 투여했지만 정상 식물과 달리 면역반응이 충분히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병원균에 감염됐을 때도 정상 식물보다 피해가 크게 나타났습니다.
RG-I가 세포벽 손상을 알리는 신호이며, ARM 수용체가 이 신호를 인식해 식물 면역을 작동시키는 핵심 감지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입니다.
이번에 구축한 분석 플랫폼은 식물의 다른 위험 신호와 감지 수용체를 찾는 데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병원균에 강한 작물 품종을 개발하거나 식물의 자체 면역을 이용한 친환경 방제기술을 만드는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교신저자인 이두화 초빙연구위원은 "수만 건의 당 분자와 수용체 상호작용을 정량적인 자료로 구축한 것이 이번 플랫폼의 강점"이라며 "앞으로 새로운 위험 신호 발굴과 병에 강한 작물 개발에 중요한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몰레큘러 플랜트(Molecular Plant)'에 지난달 17일 온라인 판에 실렸습니다.
< copyright © tjb,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 300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