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이미지 1
16세기 유럽의 종교 지형을 뒤흔들며 근대 문명의 문을 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혁명가이자 반(反)혁명가'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인물입니다.
한쪽에선 위대한 신학자이자 사상가로 추앙받지만, 동시에 농민 반란을 탄압하고 유대인을 향한 혐오를 조장한 악인으로도 지목됩니다.
'정체성 발달' 이론의 창시자인 독일 출신 미국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이 1958년에 출간한 '청년 루터'(교양인)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습니다.
책은 청년 시절의 루터를 자신이 창안한 정신분석학의 눈으로 깊게 들여다봅니다.
에릭슨은 '인간은 누구나 인생의 전환기에서 정체성에 대한 깊은 혼란을 겪는다'는 자신의 지론을 루터에게 그대로 적용합니다.
청년기 내내 아버지의 기대와 종교적 소명 사이에서 고뇌하던 루터는 심각한 죄의식과 우울증, 불안 발작에 시달렸습니다.
수도사로 생활하던 중에는 미사 중 손발이 굳어버리고 쓰러질 만큼 극심한 신경증적 증상도 겪었습니다.
이를 두고 '신의 계시'나 '악령의 장난'이라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에릭슨은 '정체성 위기'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루터가 이 고통을 어떻게 돌파하고 교황청에 맞서 '신학적 창조성'을 발휘하게 됐는지를 추적합니다.
에릭슨은 아버지와의 갈등이 루터의 내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법조인이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수도사가 된 루터가 이를 계기로 '권위에 대한 내적 반발'이라는 기질을 갖게 됐고, 이는 자연스럽게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이후 정체성 혼란에서 벗어난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를 중심으로 새로운 신학을 정립합니다.
에릭슨은 이를 '내면의 혁명'으로 규정합니다.
루터가 성서 강의를 통해 중세 신학의 틀을 벗어나 믿음의 본질을 재해석한 과정은 모든 의심 이전에 존재하는 믿음으로 돌아가는 '유아기적 신뢰로의 회귀'였다고도 진단합니다.
루터가 내면의 분열과 죄의식 속에서 혼란을 겪다가 결국 궁극적인 신뢰와 자아의 재정립을 이뤄냈다는 것입니다.
에릭슨은 루터 외에도 프로이트, 다윈, 키르케고르,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위대한 창조성을 발휘한 역사적 위인들이 겪었던 정체성 혼란도 함께 들여다봅니다.
이를 통해 내적 고통이야말로 창조성과 새로운 도약의 원천이라고 말합니다.
TJB 대전방송 (사진 연합뉴스)
< copyright © tjb,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 300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